PART4. 내 아이, 욱하는 어른으로 키우지 않으려면

나의 해결되지 않은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표현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누군가 욱하면서 난리를 치면, 상대방은 일단 "예. 예." 한다.
무서워서가 아니라 더러워서 피한다.

부모가 욱해서 소리 지를 때 아이가 가만히 있는 것은, 부모를 존경해서나 부모의 생각이 옳아서가 아니다.
어릴 때는 그런 부모가 무서워서 몸도 마음도 그 순간 꽁꽁 얼어서 꼼짝 못하는 것이고,
좀 자라면 '아, 또 난리네'하고 부모를 피하는 것이다.

'욱'은 도덕성 발달과도 매우 관련이 깊다.
나의 행동이나 언사가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고려하고 타인의 권리를 존중하는 것이 바로 도덕성이다.

우리 모두가 안전한 세상을 살기 위해서는 다음의 세 가지 가치가 반드시 지켜져야한다.
첫째,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을 때릴 권리는 없다.
둘째, 어느 누구도 자신의 해결되지 않은 격한 감정을 다른사람에게 표현할 권리는 없다.
셋째, 타인의 권리도 소중하다.

[못참는 아이 욱하는 부모]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말한다.
욱은 감정을 해소하고 문제해결방법을 찾는 방안이 아니라 그저 언어폭력일뿐이다.

부모이기 전에 사람이기에 화가나고 욱하는 순간은 분명 존재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 감정을 그대로 아이에게 풀어서는 안된다.
아이뿐 아니다. 살면서 나의 어그러진 감정을 누군가에게 풀어서는 안된다.
화나고 욱하는 상황은 상황이고 불편한 감정은 내 감정이기 때문이다.

참을 필요는 없다. 잘못된 걸 잘못됐다고 말하는건 틀리지 않았다.
다만 잘못된 걸 전하는 과정에서 내가 흥분해 있다면 상대방에게 전달되지 않고 결국은 내가 잘못된게 되버린다는 걸 잊으면 안될 것 같다.

욱하는 나, 달라져야 한다.

욱을 다스리려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
가장 먼저 나의 예민함과 불안함, 감정 조절의 어려움을 인정해야 한다.
또한, 이것이 화살이 되어서 내 자신에게도 상처를 입히고, 내 가까이에 있는 사랑하는 가족들한테도 상처를 입힐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오롯이 나에게서 나온 것이다.
원인을 다른 사람한테 돌려서는 안된다.
이 문제는 결국 나의 것이고, 해결해야 하는 주체도 ''다 

내 감정의 주인은 나다.
'저것들이 나를 건드리니까.', '저것들이 나를 화나게 만들었으니까.',  '저것들이 말을 저따위로 하니까.'
내가 욱하는 것이라고 변명하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아이가 참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내가 욱한다면, 나 또한 아이와 똑같은 것이다.
아이가 그렇게 된 원인을 파악하는 것과 내가 그렇게 된 원인을 파악하는 것은 그리 다르지 않다.
내 원인을 찾는 것이 아이를 도와주는 방법을 찾는 일이다.

[욱] 하는 감정은 문제를 해결하는 해결책이 아니라.
문제를 더 악화시키는 [폭탄]이다.

폭탄에 붙은 불을 끄고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할지..
아니면 폭탄에 붙은 불을 그대로 방치하며 상대방과 함께 자폭할지는 결국 내 선택이다.

[욱]함으로 당장 마음의 불은 사그라든것처럼 느껴질지 몰라도 돌이켜보면 나를 포함해 그자리에 있었던 사람은 분명 어떤식으로든 상처가 남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상처는 분명 부메랑처럼 더 안좋은 상황을 가지고 나를 다시 찾아 올 것이다.

상대를 탓하지 말라, 그가 욱할지라도

남을 '탓하는 것'만큼 강력한 '욱'의 도화선도 없다.
지금 이 매끄럽지 않은 상황을 잘 해결해 보려고 하지 않고, 이미 지나간 것까지 끄집어내 모든 잘못의 근본을 상대방 탓으로 돌려 버리면, 상대방은 대부분 욱한다.
그런데 탓을 하다 보면 정말 다 상대 탓인 것 같다. 그래서 마치 내가 손해를 많이 본 기분이 든다.
내 말에 욱하는 상대방이 꼭 적반하장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더 욱하게 된다.
이런 과정으로 내가 누군가의 탓을 하면 내 욱도 커지게 되어 있다.

'욱'의 원인이 무엇이든 나의 좋지 않은 감정이 쌓여 있다가 터져 나오는 것이다.

우리는 의사소통을 할 때 문제의 원인을 객관적으로 찾기보다 무조건 상대방을 탓하기 쉽다.
하지만 이것이 서로의 감정을 자극해 상대방을 욱하게 만드는 출발점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내가 그렇다.
다른 사람과는 그렇지 않은데..배우자와의 싸움을 돌아보면 그 곳에는 꼭 [탓]이 있다.

그리고 그 [탓]이 어떻게 욱을 불러오는지도 너무나 잘 알겠다...
육아를 위해 읽은 책인데..나의 태도에 대해 많이 반성하고 배우는 시간이었다.

굳이 육아가 아니더라도 정말 많은 [욱]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그리고 [욱]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이 많은 세상에서 한 번쯤은 읽어보고 자신을 돌이켜 볼 시간이 필요한거 같다.

다양한 형태로 시시때때로 나오는 [욱]이라는 감정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가 진행되고
욱으로 대처하였을 경우 따라오는 피드백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이야기 되어 정말 좋았던 책!!!!!

참아주는 것이 아니라 기다려야만 하는 것

병원에서, 강연에서, 방송에서 늘 아이를 좀 기다려 주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부모들은 아이를 기다리는 것을 화를 누르고 참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육아에서 아이를 기다리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 당연한 것을 '참아준다'고 생각하면 순간 욱하게 된다.

기다릴 때는 그냥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으라는 것이 아니다.
부모가 꼭 해야 할 중요한 일이 있다. 바로
'관찰'이다.
여러 번 관찰했더니, 아이가 어떤 공통된 문제 행동을 한다.
그러면 이번에는 적절한 선에서 여러 번 '개입'해 줘야 한다.
매번 신경질을 내면서 말하는 아이라면 "좋게 말해. 화내지 말고" 이 정도로 여러번 지도해준다.
어떤 감정도 싣지 않고 여러번 개입한다. 이때 단번에 빠른 결과를 기대하면 실패한다.
단번에 빠른 결과를 기대하면 분명 아이에게 과한 감정적 자극을 주게 되고, 그렇게 되면 반드시 반대급부로 중요한 것 하나를 잃게 되어 있다.

기다릴 때는 '관찰'이 중요하고, 절대 과하지 않은 적당한 '개입'이 필요하다.
그런데 얼마나 기다려 주어야 하고 어떻게 적절하게 개입해야 하는지를 아는 건 참 어렵다. 

나도 나의 단점을 단번에 고치기가 어려운데...
왜 아이에게는 바로 수정되기를 바라는지...

나는 아이가 어딘가에서 "버릇없다. 개념없다."라는 평가를 듣는게 두렵다.
그렇다보니 기본예의와 관련된 일들은 다른것들에 비해 더 강압적으로 훈육하는 편이다.

하지만 이제 겨우 7살일 뿐인데...
아이 유치원에서 중학생 큰아들을 둔 아이 엄마가 얘기해줬다.
[어깨에 힘을 빼라고. 엄마가 두려워 하는 순간 아이와 나에게 압박이 된다고.]
이 책을 읽고 나니 그 선배맘이 한 이야기가 무슨 의미인지 알겠다.

기다려주는거다.
두려움에 숨어 다가오지 않을 미래를 걱정하며 내 아이를 믿지 못한채 [욱]으로 훈육할게 아니라 아이가 달라질 수 있도록 [욱]이 아닌 교육을 아이에게 하면되는 것이었다.

분명 내 아이라면 훌륭하게 자랄 수 있다라는 믿음을 가지고 아이가 옳은 길을 갈 수 있도록 알려주며 기다려주는거였다.
아이가 잘 몰라서 잘못된 길로 한걸음 갔다고 해서 손목을 잡아끌고 거칠게 데려올게 아니라 그 쪽길이 아닌 이 쪽길이라고 알려주고 아이가 올 때까지 기다려주면 되는 거였다.

아직도 훈육이나 교육이나 육아나 여러모로 기준이 모호하고 어렵다.
여전히 내가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두렵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이가 잘 크기를 바란다면 나는 윽박지르는 엄마가 아닌 기다려주는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하는 거란 걸 새삼 배웠다.

 

 

 

Posted by 귀찮은 여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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